참회 / 정호승 시인
나 이 세상에 태어나
지금까지 나무 한 그루 심은 적 없으니
죽어 새가 되어도
나뭇가지에 앉아 쉴 수 없으리
나 이 세상에 태어나
지금까지 나무에 물 한 번 준 적 없으니
죽어 흙이 되어도
나무뿌리에 가닿아 잠들지 못하리
나 어쩌면 나무 한 그루 심지 않고 늙은 죄가 너무 커
죽어도 죽지 못하리
산수유 붉은 열매 하나 쪼아 먹지 못하고
나뭇가지에 걸린 초승달에 한 번 앉아보지 못하고
발 없는 새가 되어
이 세상 그 어디든 앉지 못하리
출처 :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
글쓴이 : 나무로즈마리 원글보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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